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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소식

도전! 1000억 벤처 / (16)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회장
첨부 2018-03-13 128

두번 사업실패가 치과재료시장 1위 밑거름

 

실패후 부친 무덤서 극단 생각…`다시 사는 인생` 각오로 뛰어

과용 충전재로 글로벌 장악…수술용 봉합원사는 中서 우뚝 

 

 

◆ 도전! 1000억 벤처 / (16)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회장 ◆ 

 

 


1989년 5월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1억원과 대출금 2억원 등 전 재산을 거의 털어 치아용 충전재를 생산하는 한국슈어프로덕트를 인수했다. 1986년부터 몸담았던 회사가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위기에 처하자 부도만은 막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노조가 잘 따라주는 듯했으나 몇 달 안돼 강경 자세로 돌변했다. 자신의 월급을 반으로 줄이고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노조가 아파트로 찾아와서 밤에 꽹과리나 징을 치면서 '물러가라'를 외치는가 하면, 아파트 벽에 페인트로 욕을 써놓곤 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이었던 두 딸이 고통받던 모습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대표로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돼 쫓겨나다시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돈도 전부 날렸다. 

 

죽고 싶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친·인척에게 2억8000만원을 빌려 인도네시아 투자자를 구해 1990년 메타바이오메드의 전신인 메타치재산업과 인도네시아에 치과용 충전재 제조 공장을 세웠다. 기술 개발에 성공했지만 바이어들은 "'메이드인 인도네시아'를 누가 사겠느냐"며 냉정하게 돌아섰다. 3년 만에 모든 돈을 또 날렸다.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1993년 6월 소주 2병과 신경안정제 30알을 들고 아버지가 묻힌 경기도 송추에 있는 운정공원묘지로 갔다. 생을 마감하기로 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치과용 충전재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리며 연 매출액 600억원대 기업 메타바이오메드를 설립한 오석송 회장(64) 얘기다. 

 

"산소에서 쓰러져 잠들었다가 새벽 4시 무렵 깼는데 공포가 엄습해오더라고요. 두 팔을 벌리고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가슴에 쌓여 있던 고통과 절망감이 싹 내려갔습니다. 멀리서 여명이 비치면서 바닥에 흩어져 있던 신경안정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내가 이 약을 먹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죽을 각오로 다시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회장은 그날 이후 "어차피 다시 얻은 인생인데 이제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느냐"며 죽기 살기로 사업에 매진했다. 그 길로 산에서 내려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고등학교 친구 7명은 맞보증을 서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오 회장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 청주로 내려가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지하 방을 얻었다. 경영부터 영업, 운전기사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그의 재기는 이렇게 밑바닥에서 시작됐다. 

 

2001년 6월 지금의 사명으로 변경한 메타바이오메드는 치아 신경치료를 할 때 썩은 부분을 갉아내고 신경 위에 덧대는 성분인 치과용 충전재와 수술 후 체내에서 일정 기간 후 분해되는 수술용 실 생분해성 봉합원사를 만든다. 또 뼈 이식재(골수복재), 척추 디스크 환자를 위한 일회용 초소형 내시경, 얼굴 주름을 당기는 데 사용되는 성형사 등이 주요 품목이다. 2001년 세계에서 7번째로 생분해성 봉합원사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도 이것을 만드는 기업은 메타바이오메드를 포함해 세계에서 7곳뿐이다. 

 

"치과용 충전재 시장에서 조금씩 자리 잡아가면서 1998년 새 먹거리를 봉합원사 사업에서 찾기로 했습니다. 당시 회사 연 매출액이 30억원이 채 안 됐는데 설비 마련 등 투자비용으로만 50억원이 필요하더군요. 창투사 20여 군데를 돌아다니며 투자해달라고 설득했지만, 다들 망할 것이라면서 거절하더라고요. 프라이머리CBO라고 기술력 있는 기업에 무담보대출을 해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30억원을 투자받아 본격 확장했어요." 

 

오 회장은 중국의 봉합원사 시장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2002년부터 중국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중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파란 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조직폭력배들의 헤어스타일로 불리는 일명 '깍두기' 머리를 하고 다녔다. 오 회장은 지금도 이 복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출장을 한 번 가면 고량주만 100병을 소진하고 올 만큼 영업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1년 후 중국 봉합원사 시장에서 메타바이오메드는 강자로 우뚝 섰다. 지난달에도 1박3일로 미국 출장을 다녀올 만큼 해외시장 개척에 열중하고 있다. 

 

아메리카 아시아 중동 유럽 등 세계 곳곳을 공략한 덕분에 메타바이오메드는 세계 10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한다. 매출액 중 9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온다.

 

오 회장은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갈 만큼 쉼 없이 달려왔지만 회사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출근한다. 

 

"지난 1월 충북 오송에 대지면적 3133㎡ 규모로 '메타뷰티 R&D센터'를 완공했습니다. 고령화시대로 갈수록 성형사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어요. 아직 성형사 시장에서 존재감이 약하지만, 머지않아 세계 성형사 시장에서 메타바이오메드 명성을 높일 것입니다."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161515

매일경제 신수현 기자  2018.03.12 17: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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